[가이무/밋치마이] 같이 걷기
f. 커미션 Jessia님
Copyright 2016. 레스타트 all rights reserved.
여름의 체육 시간은 끔찍하다. 미츠자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땀에 젖은 체육복을 잘 접어 가방에 넣었다. 타버릴 듯한 햇살을 맞아가며 그다지 뛰지도 않았던 운동장을 다시금 걸어간다.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서라도 향하는 곳은 언제나 그녀가 있는 곳. 학교가 끝날 시간 즈음 언제나 스테이지에서 한발 앞서 춤을 추고 있는 그녀를 보고 합류하기 위한 걸음이 조금은 빨라졌다. 두근두근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지만 아마 그녀는 알아주고 있지 않을까? 아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걸지도 몰랐다.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공기를 폐에 한껏 담아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어서 보고 싶었다. 더위가 무슨 상관이야, 미츠자네는 곧 온 얼굴에 미소를 덮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마이 누나!”
“밋치!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어서 춤추고 싶어서요.”
물론 거짓말이 반쯤 섞여 있는 말이었다. 춤을 추고 싶은 것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완전한 이유로 볼 수는 없는 말. 누나가 좀 더 보고 싶어서, 라는 말을 삼킨 채 미츠자네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마이의 밝은 목소리에 밋치는 슬쩍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다. 하얀 얼굴에 진한 화장이라도 한 것마냥 붉은 홍조가 떠 있다. 더는 표정을 억지로 숨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웃음을 덮었지만 곧 자연스럽게 지어질 행복감을 알기에 더 이상 억지가 아니었다. 팀 가이무의 상징 같은 후드를 걸쳐입고 손을 잡아 이끄는 모두를 따라 스테이지에 발을 딛어 올라간다. 시간에 맞춰 구경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몸을 풀던 그들에게 노래가 들려왔다. 약속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어떠한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정하지 않았지만 서로서로 몸을 움직이고 발이 바쁘게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만큼의 즐거움이 함께했다.
문득 마이의 시선이 미츠자네의 쪽으로 향했다. 즐거워 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계속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막고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춤에 집중하고 싶어 고개를 돌리고 다른 팀원과 손발을 맞추려는 찰나였다. 그저 집중하지 않아서 벌어진 사고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마이 누나?”
“어, 어? 꺄악!”
마이의 스탭을 밟던 발이 꼬였다. 동시에 옆으로 지나던 미츠자네의 몸과 부딪혀 균형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대로 넘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미츠자네가 팔을 빠르게 뻗어 마이의 몸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는 몸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결국 둘은 같이 무대 위에서 나뒹굴고야 말았다. 관중들의 중얼거림과 함께 팀원들의 다급한 걱정의 소리가 무대를 채웠다. 노래가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걱정의 소리가 쏟아졌지만 둘은 아무래도 좋았다. 완전히 누워버린 미츠자네의 위에 팔을 잡힌 채로 엎어져 있는 마이. 이 둘은 서로 어찌할 줄모르는 상황에 부딪혔다. 다시 두근두근하고 있어, 그렇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심장 소리를 애써 숨기려 했다.
“……괜찮아요?”
“미안. 미안해 밋치! 아프지?”
“으음, 응. 좀 그래도 누나가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요.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마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미츠자네의 말을 듣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붉어진 얼굴과 둘의 열기 때문인지 모를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다. 황급히 무대 바닥으로 몸을 옮겨 손부채 질을 하길 몇 차례, 미츠자네는 마이에게서 다시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방금까지 맞닿아 있던 그녀에게서 느껴진 두근거림과 계속해서 붉어져 있는 얼굴이.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시선이 어쩌면 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게 했다.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깨져버릴 이 관계가 두려웠다. 확신도 없이 나서지 않는 습관이 무서웠다. 누군가 상담이라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 좀 더 나아졌을지도. 마이는 한참 동안 시선을 피했다. 어수선한 행동도, 횡설수설하는 말도 없이 시선을 피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이내 미츠자네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흐릿하게 턱과 코 부근을 왔다 갔다 한다.
“……분명 다쳤을지도 몰라!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응. 그럴게요.”
선뜻 수락의 의사를 건네고 말았다. 욱신대는 건 넘어진 등이 아닌 다른 의미의 가슴일 뿐이었다. 둘은 다른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스테이지에서 벗어났다. 더위가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그저 춤을 췄을 때 더위가 잊힐 정도의 즐거움이 앞섰다는 게 확실했다. 조금 전 일이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시시한 이야기를 꺼내 서로의 화제를 돌렸다. 정말 안 아프니? 아냐 분명 발갛게 부었으니까. 한 사람이 시시하다고 말했어도 정작 서로에게 와 닿는 말의 의미는 달랐다.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즐겁고 받아줄 수 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도착한 병원은 예상외의 상황에 닥쳐있었다. 마침 돌고 있는 뇌염에 환자들이 급증해 긴급 환자,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미츠자네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마이에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나중에 혼자 다시 와볼게요.”
“그래도…….”
“약. 약속할게요, 마이 누나!”
무심코 내민 새끼손가락. 마이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손가락을 바라보다 이내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같아, 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어 약속한 뒤 마이는 병원을 먼저 나섰다. 미츠자네의 고집 때문인지 영 그를 먼저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주 잡았던 손이 신경 쓰인다. 낮부터 어째서 계속 이런 거지? 아무리 고민해도 사실 답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마치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소녀 주인공처럼 사랑에 빠져버렸어 ̄ 마이는 애써 딴청으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약속하면서 조건을 걸었다. 내일은 팀 연습이 없으니 만나자고. 충동적이었지만 언제나처럼 웃던 미츠자네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거에 조금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미츠자네도 고민에 빠졌다. 마이를 팀 시간 외의 시간에 단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옷장을 뒤졌다. 가장 무난하고 좋아할 만한 옷은 뭐가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서 잠들지 않으면 약속에 늦을지도 몰랐다.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 가장 큰 일은 떨리는 마음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해. 머릿속의 천사가 한쪽의 다른 악마와 싸우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가 될지 모르잖아? 아니. 너 같은 겁쟁이는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돼! 꼬여가는 자신의 머릿속을 무시하고 미츠자네는 옷을 고른 뒤 침대로 떨어지듯 누워버렸다.
***
데이트라고 부르기엔 뭐하지만 둘만의 만나는 날. 미츠자네는 약속대로 병원에 먼저 들렀다. 역시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확진을 내렸고 만약 아프다면 다시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내쫓기듯 병원의 앞에 서 있었다. 고심 끝에 고른 옷은 결국 팀가이무의 후드였다. 평범하고 미츠자네 자신과 같은 옷이기에 마이가 가장 좋아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밋치!”
병원은? 멀리서 달려오며 냉큼 가장 먼저 물어보는 마이의 질문은 예상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에 다녀왔단 얘기를 하자 마이는 활짝 웃으며 미츠자네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놀러 가자! 이대로 나왔는데 헤어지긴 아까워!”
“엑. 진짜요?”
“싫어?”
“그럴 리가요.”
별거 아닌 듯 끌어가는 마이나 끌려가는 미츠자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끌리듯 도착한 곳은 번화가였다. 사람이 우글거리는 화려한 상점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카페에 들어가 마이가 먹고 싶어 하던 것을 먹고, 예쁘거나 멋있는 옷이 있다면 가게에 들어가서 입어보고. 별거 아닌 흔한 데이트와 같은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밤이 되자 거리는 더욱 붐볐다. 더운 집을 벗어나 거리로 하나둘 나온 가족과 연인들, 혹은 홀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 그 사이에 마이와 미츠자네는 함께 걷고 있었다. 문득 어젯밤 작은 악마가 속삭였던 실패의 말이 생각났다. 너는 숨기고 있어야 해라는 말을 구겨 넣어 버린다. 지금 미츠자네의 감이, 천사가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고백은 하자고.
“저. 마이누나!”
“응?”
“할 말이 있는데요.”
할 말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다. 미츠자네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곧 마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굳어진 표정으로 마이를 쳐다보는 미츠자네는 진지했다. 그런 미츠자네를 보고 마이는 깨달았다. 아마 이 뒤에 올 말은 예상하건대.
“……좋아해요.”
저질렀다. 굳게 먹은 마음과는 달리 말은 쉽게 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뜬금없다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한 쪽에 존재했다. 고백할 때보다 더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랐다. 싫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밋치. 나는 말이야.”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어요.”
“바보! 다 알고 있던 거잖아? 내가 좋, 좋아하는 거.”
마이의 말을 끊고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해버린 것도 잠시였다. 서로 말해버린 후 놀란 표정으로 멍하게 응시하는 게 꽤 우스꽝스러웠다. 잘 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만지작거리러뎐 찰나 마이가 잔뜩 부루퉁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멋대로 단정 짓는 건 나쁜 버릇이다. 이 얼굴에서 알 수 있었다.
“좋. 좋아했어요?”
“과거형이 아니란 말이야!”
지나가던 행인들이 힐끔힐끔 미츠자네와 마이를 쳐다본다. 웃고 있는 이들도 있으며 어이없다는 표정도 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휘파람소리가 그들을 향한 것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서로의 고백을 들었던 사람들은 걸음을 옮기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밝은 밤의 거리 속. 연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다른 하나의 연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움이었다. 미츠자네는 곧 잠자코 마이의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불안감이 확신 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도 좋아해…… 미.밋치?!”
미츠자네는 연신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울 거 같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대답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조심히 마이를 끌어안았다. 놀란 목소리도 잠시 별 저항 없이 폭 안긴 마이의 손이 밋치의 등을 토닥였다. 편히 안아주는 그도, 그녀도 진심으로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부터 1일. 계속 같이 춤추고, 걸어 다니지만, 좋아한다고도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됐어.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