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원한다. 너의 검이 우라마사와 맞 붙을 때, 그리고 가려버린 시선이 똑바로 앞을 향해 나를 바라볼 때야 비로소 진의를 알게 될 것이다— 악몽같지만 달콤하게도 흘러 들어오는 쥬조의 속삭임은 계속해서 타케루를 괴롭혔다. 외도중과의 싸움이 끝난지도 어느덧 1년이 흘렀다. 1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고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의 정리라면 진작 할 수 있을 지나간 날들. 타케루는 방의 문을 살짝 열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환영과 싸우는 것은 고독했고 무거웠다.


 "……. 나는."


 빛이 새어 들어와도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지나치게 어두워서 눈을 감은 것만 같은 느낌에 타케루는 손을 뻗어 옆에 놓아두었던 쇼도폰, 검을 쥐었다. 손길이 닿지 않아 온기를 찾아볼 수 없는 검은 싸늘하게 타케루의 손을 잡아왔다.
차가워도 네 손은 검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가? 어느새 쥬조는 타케루의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이 느껴져, 착각이 아니다. 쥬조는 뱀처럼 웃고 있다. 검을 잡은 손을 맞잡아 왔다. 유령처럼 주위를 떠돌지만 실제처럼 옥죄어 오는 쥬조는 타케루를 기다리고 있는듯 움직이고 움직였다.


 "나의 마지막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멋진 일이군, 신켄레드."
 "웃기지마라."
 "이것은 무엇이지? 나는 무엇이지? 나는 너를 진실로 만들어 줄 유일한 존재다. 그렇지 않고 서야 너는 이미 죽어버린 자를 이리도 불러낼 리가 없지."
 "사라져. 사라지라고 했다!"


 쥬조는 다시 한 번 웃어보인다. 크게, 유쾌하게. 타케루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어느새 문은 크게 열려 빛이 한가득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쥬조는 사라졌다. 타케루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갑갑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언제나 똑같은 시작이고 똑같은 마무리였다. 수행을 하고 센서를 확인하고 가만히 글을 쓴다. 간간히 나타나는 쥬조는 매섭게 타케루를 바라보고 검을 건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신켄 레드. 너는 어째서 내 눈을 바라보지 않지?"


 타케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처럼,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혼란스럽기 때문인가?"


 타케루는 붓을 멈추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


 타케루는 흔들렸다.


 "…… 시바 타케루. 내 이름이 무엇이지?"


 쥬조는 타케루의 앞에 서 있었다.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쥬조는 타케루에게 되물었다. 내가 누구인가? 타케루.


 "…… 쥬조."


 타케루는 고개를 들어 쥬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텅 빈 공간. 눈에서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서와라, 너는 결국 내게 졌고 외도의 마음을 버릴 수 없어 내게로 떨어진 것이다. 쥬조는 웃지 않았다. 꽉 다문 서로의 입술은 겹쳐지고 조용히 문이 닫혔다.

by 레슷 2015. 10. 8. 20:03